예정보다 하루 빠른 전날 포스터를 철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일본은 새로운 개혁을 위한 모델이었다.
그나마 근대화를 위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단지 왕실을 위한 작업으로 비추었다.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특별한 조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19세기 말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였다.결과적으로 볼 때 근대화의 성공이 제국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청의 개입 청에는 책임이 없었는가? 동아시아에는 수백 년 동안 조공관계가 지속하였다.
일본·중국·러시아가 물고기(조선)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통치자가 난세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어진 재상을 발탁하여 보좌를 받고 있다는 것인가.
[중앙포토] 어진 재상(賢相)은 오늘로 보면 총리나 장관 등 고관대작이겠지만.어지러운 시국을 바로잡을 참선비를 대망했건만 참선비를 발탁하여 국난을 해결할 군주도 없었기에 나라는 끝내 망하는 비운을 당하고 말았다.
다산은 ‘문유(問儒)라는 글에서 부패한 부유(腐儒).참선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태평성대를 이룩할 통치자가 존재하고 있는가.